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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한국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은주와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왈츠를 출 때 나왔던 음악이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이다. 한동안 내 폰의 벨소리로 쓰이기도 했던 음악.
[시대의 소음]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작가 줄리언반스가 사회주의 나라 소련에서 살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그려놓은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알지 못했던 한 작곡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그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 수 있게된다. 전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은 하지만 전기가 아닌 소설 형식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굴곡있는 그의 인생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러시아의 작곡가이면서 뛰어난 피아니스트기도 했던 그의 손이 작았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80개가 넘는 건반들로 이루어진 악기인 피아노는 보통 손가락이 길고 날렵하게 생겨야만 잘 칠 수 있는 악기라고만 생각해왔었는데 뜻밖의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지금은 러시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소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의 그 나라는 좀더 사회주의고 공산주의에 가까왔다. 그런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가 있었을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몇십년전에는 금지곡으로 지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가사가 불건전하면, 멜로디가 우울하면 전부 금지곡으로 몰아붙였다. 이 시대도 다를바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만든 작품이 초연을 하고 금지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자유로운 상황에서 곡을 만들지는 못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곡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들으니 그의 작품들이 또 다르게 들리는 것만 같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대의 소음'. 어느 시대나 소음을 만들어 낸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시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소음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서 그 시대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 것이다. 음악가이자 예술가였던 그가 이 시대의 소음에 대항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남긴 음악들이 그가 시대의 소음에 대항하는 방법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대항을 하던 그였지만 공식으로 보이기에는 당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대성공을 거둔 작품들도 있고 그의 음악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당에서는 그로 하여금 입당하라는 압박을 보내온다. 그렇게 고사를 거하고 거절을 했건만 그는 결국 당에 입당을 하게 된다. 그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리가 없다라고 되뇌는 것을 보면 그가 생각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부스러기들은 때로는 아주 오랜후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법이다.
러시아의 독재자들이 어떻게 음악을 이해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레닌과 스탈린과 흐루쇼프. 그 어느 사람도 음악가에게 최선일수는 없을 터 그는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고치고 감싸안았을까.
모두가 하나임을 주장하고 그에 따라 당에 충성하는 일만이 존재하던 그 시절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을 것. 그의 인생이 좀더 손에 잡힐듯 느껴지게 된다.
루팡의 소식
경찰서 간부와 기자와의 연회. 악연인듯 인연일수밖에 없는 그들의 관계. 뺑소니 사건으로 인해 한때 긴장감이 돌았지만 금세 해결되므로 인해 오늘만큼은 모두들 편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쪽지가 하나 날아온다. 15년전 자살사건이 살인사건이라는 것. 그것도 바로 오늘 딱 24시간의 공소시효가 남았다는 것.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범인을 처벌할 수도 없다는 것. 간부들은 연회를 뒤로 한 채 기자들 몰래 빠져나오기에 이른다.
공소시효. 모든 범죄에는 공소시효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시간까지는 범인을 잡아서 처벌할 수 있으나 그 이후가 되면 설령 범인을 잡는다해도 그 범죄사실로 처벌할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범인이 좋으라고 만들어진 법인지 아니면 경찰들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만든 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불합리한 면이 없잖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또한 공소시효가 있었다. 법이 개정되어서 살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살인범은 언제라도 잡기만 하면 법의 처벌에 맡길수가 있게 된 것이다. 다행이다 싶다.
15년전 학교에서 여교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옥상에 남겨진 신발과 유서로 경찰들은 자세한 조사 없이 그저 자살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공소시효를 딱 24시간 남겨둔 지금 살인이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범인을 잡는 것도 어렵지만 시간에 쫓기는 싸움을 해야한다. 이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세사람의 제자가 공모해서 교사를 죽였다는 제보, 그중 주범이 기타라고 정확하게 알려준 제보대로 경찰은 기타를 데려온다.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 그저 평범하게 사는 듯 했던 그의 과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그의 취조를 맡은 경찰은 편안하게 그를 둔다. 무엇이든 이야기해보라고 말이다. 그는 무엇부터 이야기할지 모르다가 자신들이 이름을 붙인 루팡사건부터 꺼내놓는다. 학창시절 말썽장이 삼인방이 모여서 만들어낸 그 사건은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치기어린 장난이라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사건이라 할수도 있다. 공부는 하기 싫고 시험은 다가오고.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수업도 빼먹고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 점수를 잘 받으려고 했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심심거리로 놀만한 장난이 필요했을 뿐이다. 스릴 넘치는 사건 말이다.
한밤중에 학교에 잠입해서 시험지를 훔친다. 얼마나 짜릿한 모험인가 말이다. 그들은 결국 그것을 해내고 만다. 단 하루도 아니도 나흘내내 학교에 칩입해 당직 선생을 따돌리고 시험지를 훔쳐낸다. 이중삼중으로 둘러싼 경계를 풀고 시험지를 훔쳐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모든 것을 끈기있게 연속적으로 해냈다는 사실이 더 대단하다. 그들이 말하는 사건과 여교사 자살 사건은 어떨게 연결될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생각한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가볍다. 아무래도 첫소설인만큼 묵직한 맛은 떨어진다. [그림자밟기]를 생각한다면 비슷하게 가벼운 면이 있으나 그보다는 좀더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클라이머즈하이]를 생각한다면 역시 그보다는 훨씬 더 밝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어보고는 싶으나 무겁고 두꺼워서 조금은 어렵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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