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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천재 기타리스트, 저널리스트, 매니저, 경제학자. 네 명의 주인공이 설정된 드라마. 둘씩 짝을 지어서 모두가 해피엔딩일수도 있고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는데 그 누구도 말을 안해요' 라는 노래가사처럼 서로간에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남사친, 여사친을 운운하며 지낼수도 있을 것이고 모두가 앞으로 나란히한 것처럼 서로가 상대방만을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온리 짝사랑일수도 있겠다. 작가는 어떤 설정을 구상하고 있을까?
아름다운 파스텔톤이 입혀진 표지에는 두사람이 나란히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정도의 거리. 얼핏 손을 맞잡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독자적으로 걷고 있는 듯도 보이는 표지로는 이 둘의 관계를 짐작조차 할수도 없겠다. 그저 행복한 엔딩이길 바라며 읽어보게 된다.
지금 막 콘서트를 마친 천재적인 기타리스트 마키노. 데뷔20주년 기념으로 펼져친 공연의 마지막 날. 공연은 훌륭하게 마쳤지만 대기실 앞에서 기자들이 40분씩이나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는 혼자서 무슨 생각으로 대기실에 있었던 것일가. 천재적인 뮤지션들은 다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일까.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의 전조증상이라고 할수밖에 없는 그날의 행동. 그는 그녀를 보았다. 레코드 회사의 담당자와 함께 나타난 그녀, 프랑스의 기자, 요코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얼핏 서양인의 느낌을 주는 그녀, 어쩌면 혼혈인지도 몰랐다.
아빠는 크로아티아, 엄마는 일본인이였던 그녀. 처음 본 그 느낌은 정확하게 맞았다. 마키노는 처음 만날 그날 그녀와의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지만 아쉽게도 짧은 만남은 거기서 끝이다. 스카이프와 메일로 이어지는 그들의 인연. 그는 분명 그녀를 좋아하는 게 확실하지만, 그녀 또한 그러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미국인 경제학자.
삼각관계가 형성이 된다. 오래된 인연과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나 새로운 이 인연이 너무나도 이끌린다. 요코는 이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을가. 일본과 프랑스라는 지역적인 거리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라크로 취재를 나간 그녀와는 연락도 자주 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대로 끝이 나는 것일까.
살면서 이 사람이다 싶을만큼 운명적인 이끌림을 겪어본 일이 있는가? 결혼을 했다면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만큼 강한 인상을 받아서 그사람과 결혼한 것인가 아니면 때가 되어서 돌아보니 그 사람뿐이어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인가. 영화나 드라마나 책에서 같은 운명적인 사랑은, 만남은 이 세상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존재할수도 있고 겪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며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만남은 없으니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운명같은 만남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요코와 마키노라면 돌고도는 그들의 인생을 거쳐서 만난 사랑이라면 이쯤해서 그들의 사랑이 보상을 받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들의 인생에 방해자만 없었다면 충분히 해피엔딩으로 아름답게 끝났을 일이 아닌가. 소위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는 그런 게임에 말려들어 일이 이상하게 꼬였을 뿐 다시 시작할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 혹자는 이미 잘못된 길을 가버린 그들의 만남을 다시 붙여봐야 무엇하냐라고 비판적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사랑을은 시작도 못해보지 않았는가.
그러니 충분히 이제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록 남겨진 사람들이 아플지라도 그것은 또 그들의 몫이 아닐까. '마티네의 끝'에서 겨우 만난 사랑이 아름답게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그들의 사랑이 온전하게 유지되길. 이렇게 보니 표지의 두사람은 마티네와 요코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호읍'이라던가 '안와'같은 고전적인 한자어들이 자주 사용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번역자의 선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한자를 쓰느니 그냥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라는 표현을 쓰면 되는 것이 아닌가 했다. 역자후기를 읽어보고 짐작했다.
작가의 다른 책에서 '장려한 의고체 문장'을 쓴다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분명 이 책에서의 저런 단어의 선택도 작가의 의도였다는 것. 그것을 번역자는 정확하게 캐치해낸 것이다. 작가만의 특징을 잘 살려낸 번역이라 할 수 있겠다. 읽는데 약간 걸림돌이 될지 몰라도 그런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는 면이 또 살아있는 책이라 여겨주면 될 듯 하다.
나는 어떻게 너를 읽었는가
이런 장르소설을 일다보면 묘한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질때가 많다. 데쟈뷰라고도 하던가. 분명 어디선가 많이 읽은듯한 느낌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한정되어 있는 소재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니 자연 부딪히게 되는 문제인듯 하다.
현실속에서도 테러는 존재하고 전쟁도 존재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사건 또한 일어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저마다 인간의 상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바슷한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을 때 독자들은 비슷하다라고 느끼게 되고 나아간서는 진부하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색다른 소재의 장르소설이 나오면 독특하다면서 환호를 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독특함이 너무 지나쳐서 현실감이 전혀 없을때 괴리감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의 느낌 또한 비슷했다. 막 태어난 아기, 3개월자리 아들을 죽인 엄마. 그 엄마는 아들을 죽인 죄로 감옥에 들어갔고 자신이 받은 징역보다 이르게 가석방을 신청해서 나왔다. 장르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여기쯤에서 이 설정에서 벌써 감을 잡기 시작한다. 아이를 죽였으나 그때 당시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막연히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은 죽었다고 그러지 자신은 아들을 죽였다고 그러지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오지 결국은 자신은 산후우울증으로 인해서 아들을 죽인 엄마가 되어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한번에 범인을 잡기는 어려워도 일단 의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를? 피해자를 말이다. 이 뒷면에서는 보나마나 상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번에야말로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까지 든다. 번번히 작가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반전을 당한 독자로써는 본때를 보여줄 기회라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덤벼들수도 있겠다.
그런 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책 또한 그렇게 만만한 결론을 쉽게 주지는 않는다. 데뷔작이라고 해서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플롯이라고 해서 쉽게 보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이야기다. 큰 반전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파헤쳐가면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독자의 상상 이상이며 젊은 시절의 치기가 어디까지 허용될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조차 한다.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가. 자신은 어린 시절엔 그럴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장난이라는 생각으로 넘겨 버릴수 있지만 나이가 들고 더이상 그것이 통용이 되지 않으면서 느껴지는 단절감. 어린 시절의 친구와 나이가 들어서의 친구는 또 사뭇 다르다. 생활과 사랑과 친구 그리고 그들의 비밀과 과거. 한꺼풀씩 벗겨질때마다 뜨악할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면서 읽게 될 독자들을 작가는 생각했을까.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고 상상을 뛰어넘기보다는 상상을 뒤집는 이야기. 당신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들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과거는 묻어둔 채로 현실에만 충실해서 살아갈수 있겠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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