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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죽은 자의 심판],[트라이던트]를 통해서 한국의 스릴러 독자들에게 프랑스 스릴러란 이런 것이다. 하고 제 맛을 보여준 작가 프레드 바르가스. 첫 작품때는 조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퍽퍽함이 존재했으나 [트라이던트]를 통해 보여준 스릴은 이미 스릴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이제 작가는 새로운 도전장을 던진다. 이미 알고 있는 아담스베르그 형사 시리즈가 아닌 전혀 다른 시리즈다.
등장인물 또한 색다르다.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전직형사를 필두로 한 일반인들이다. 그것도 학자들. 학자들인 무슨 추리를 하고 무슨 범인을 좇는다고 하겠지만 이웃의 실종을 토대로 한 그들 4인방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일반인의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여기에 더하여 독특한 작명센스까지 발휘하고 있다. 드라마 작가 중에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주인공들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있듯이 프레드 바르가스는 복음서 저자들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경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금세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약성경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저자 마태, 마가, 누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마티아스. 마르크 그리고 뤼시앵이다.
그들은 모두 학자들인데 전문분야도 상이하다. 마티아스는 선사시대에, 마르크는 중세시대에 그리고 뤼시앵은 1차 세계대전에 빠져있다. 모두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지식을 쓸 곳은 전혀 없다. 뤼시앵 정도만 학교에 가끔 강연을 할 뿐 그들은 그냥 머리에 지식만 가득찬 무일푼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될까.
살 곳을 찾아서 방황을 하던 마르크는 다 허물어져 가는 집 값이 조금은 쌀 법한 곳을 고르지만 그나마도 자신의 힘에는 벅차다. 자신과 대부 방두슬레가 둘이서 감당하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마티아스와 뤼시앵까지 끌여들여 3층집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웃집- 뤼시앵의 말을 빌면- 서부전선에는 왕년의 소프라노가 살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소피아. 그녀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정원에 심겨진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관심한 남편은 그냥 팬이 보낸 선물이려니 하고 말아버리지만 무언가 찜찜한 소피아는 자신들의 옆집에 이사오는 복음서 3인방에게 나무를 파 볼 것을 돈을 주고 부탁을 한다.
그렇게 친해진 이웃들은 동부전선의 쥘리에트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함께 밥을 먹기도 하며 정을 나누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진다. 남편은 어딘가 여행이라도 갔다고 하는데 그녀와 친했던 쥘리에트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감을 잡은 전직형사 방두슬레. 그의 지도하에 복음서 삼인방은 전진하여 공격태세에 이르게 된다. 정말 소피아는 여행을 간 것일까 아니면 자발적으로 사라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일까.
원제인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는 제목보다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라]는 새로운 제목이 훨씬 더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조심하라.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무엇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 밑을 파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말 신기한 캐릭터로 말미암아 읽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프레드 바르가스 작품. 원래는 아담스베레그 형사 시리즈를 기다렸지만 왠지 모르게 복음서 삼인방에게 빠져버렸다. 그들이 다음번에도 어떤 사건에 휘말릴 수 있을까. 제발 그래주기를 소망한다.
더하기 :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언제일까. 돈이 없어 전화를 설치하지 못한 것이나 화장실이 집 밖에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1980년때쯤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뒤에서 자료조사를 하면서 등장한 노트북과 스캐너. 이것은 아무리 발달한 나라인 프랑스라고 해도 80년대에 보기엔 무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90년 후반으로 넘어와야 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때 핸드폰도 없었을까? 정말 궁금해지는 시대 설정이다.
눈처럼 희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의 스릴러에 이어서 이제는 핀란드의 스릴러다. 이미 [피처럼 붉다] 라는 전작을 통해서 선을 보여진 적 있는 살라시무카의 두번째 이야기. 그저 조용히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사람은 루미키였지만 좇고 쫓기는 상황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어 버리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어떨까.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고 집에서는 독립을 해서 혼자 살고 있다. 사랑하는 블레이즈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떠나고 지금은 오직 혼자. 그런 그녀는 지금 여행중. 핀란드가 배경이 아니라 루미키가 여행하고 있는 프라하가 배경이 된다. 약간은 어두운 느낌을 주는 동유럽. 그곳에서도 프라하. 작품 상에서는 자주 언급되는 도시가 아니라서 더욱 관심이 가는 공간적 배경이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을 적어 더욱 가보고 싶은 느낌을 준다. 여행 소개가 아닌 책에서 여행가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되는 건 아마 실제로 여행이 고파서일지도 모르겠다. 루미키가 탔던 페트르진 언덕에 있는 케이블에 끌려 급경사를 오르는 기동차, 푸니쿨라르도 타보고 싶다. 루미키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발음이라고 했던가. 푸니쿨라르. 자꾸 되뇌어보게 되는 발음이다.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에서 루미키는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군가 자꾸 마주치는 것. 이상한 일이다 생각될 무렵 그 여자는 다가와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다. '내가 네 언니야.' 익숙하지 않은 스웨덴어로 건네지는 한마디. 루미키는 외동이었는데 자기 나라도 아닌 여행지에서 자신의 언니라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원래 성격도 그랬지만 전편의 일을 겪은 후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된 루미키. 그녀 또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미친 여자가 한 말쯤 치부해 버리고 자신의 갈길을 갔으면 좋았을지도 모를일이이다. 그러나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 다시 만날 계획을 잡고 또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정말 자신의 언니가 맞을까. 머리속에서 언니가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자꾸 되살아난다.
가족. 피로 연결된 관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남보다는 가족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피에 이은 눈. '언니'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소개해준 그들의 가족. 그들은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다. 눈처럼 하얗고 맑은 정신을 주장하는 그들. 그들은 정말 언니의 가족이 맞을까. 언니의 가족이라면 루미키에도 가족이 될까.
이 소설과 비슷한 가족같은 관계를 그린 책들이 있다. [통곡],[유다의 별],[사건치미교1960],[재림]. 이 책들과 [눈처럼 희다]사이에는 다른 듯 닮은 듯한 소재가 등장을 한다. 깨끗함을 주장하는 가족관계. 비슷한 소재로 다양하게 변주된 이야기를 읽는 새로운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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